
평범한 웹페이지가 멸종 명단에 올랐습니다. 명단을 작성한 사람은 Vercel CEO 기예르모 라우크입니다.
그가 올린 트윗 하나가 조회 8만 3,643회를 기록했어요. 좋아요도 1,272개가 붙었습니다. 바이럴 규모는 아니지만, 웹 인프라를 쥔 회사 대표가 내놓은 전망치고는 꽤 시끄러운 반응입니다.
문장 자체는 짧습니다. "나는 웹이 두 극단으로 진화한다고 본다. 그 사이는 잡아먹힐 것이다."
한쪽 끝에는 극도로 화려한 인간용 웹이 있습니다. 반대쪽 끝에는 꾸밈을 전부 걷어낸, 기계만 읽는 웹이 있고요. 그 사이에 낀 보통 웹페이지가 사라질 후보라는 얘기입니다. 매일 열어보는 블로그, 문서, 상품 목록 말이죠.
그가 말한 두 극단은 정확히 무엇일까요?
첫 번째 극단은 사람을 홀리는 웹입니다. 라우크가 붙인 수식어는 "즐거움, 탐험, 브랜드, 엔터테인먼트에 봉사하는 극도로 화려한 인간 경험"이에요.
이걸 가능하게 하는 도구로 vGPU·three.js·TypeGPU 세 개를 직접 거명했습니다. 셋 다 GPU로 브라우저 화면을 그리는 물건들이죠.
두 번째 극단은 기계만 읽는 웹입니다. 에이전트용 콘텐츠, 데이터, API. 라우크 표현으로는 "기계를 위한 순수하고 무손실인 신호"예요. 마크다운과 MCP가 여기서 빙산 일각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중간이 있습니다. 화려하지도 않고 기계 전용도 아닌, 사람이 읽으라고 만든 보통 HTML 페이지 전부요. 라우크는 이 층이 양쪽 극단에 흡수될 가능성이 크다고 봤습니다.
화려한 쪽 끝은 누가 만들고 있을까요?
거명된 세 도구 가운데 vGPU는 Vercel이 자사 홈 화면을 그리던 WebGPU 코드를 MIT 라이선스로 푼 라이브러리입니다. 풀스크린 이펙트 하나가 25KB gzipped입니다. 이 용량 예산은 사람이 아니라 CI가 지키고요.
나머지 둘도 같은 계열입니다. three.js는 브라우저에서 3D 그래픽을 그릴 때 가장 오래 쓰여온 라이브러리고, TypeGPU는 타입스크립트로 WebGPU를 다루는 도구예요.
셋을 묶으면 공통점이 선명합니다. 웹페이지를 문서가 아니라 렌더링 대상으로 취급한다는 점이죠.
여기서 읽히는 방향이 있습니다. 브랜드와 엔터테인먼트가 웹에서 승부하려면 CSS 애니메이션 수준으로는 부족하고, 셰이더와 GPU까지 내려가야 한다는 판단이에요. 게임 그래픽에 쓰던 기술이 마케팅 페이지로 넘어오는 중입니다.
주목할 지점은 발화자와 도구가 같은 회사라는 사실입니다. 라우크는 남 얘기를 한 게 아니라, 자기 회사가 방금 오픈소스로 푼 제품을 첫 번째 극단 증거로 세웠어요.
기계만 읽는 쪽 끝은 어떤 모습일까요?
두 번째 극단은 화면이 아예 없습니다.
마크다운은 서식을 최소로 줄인 텍스트 포맷입니다. 사람 눈에 예쁘라고 만든 게 아니라, 구조가 그대로 드러나서 모델이 손실 없이 읽기 좋은 형식이죠.
MCP는 에이전트가 데이터와 도구에 직접 붙는 프로토콜이고요. 둘 다 화면을 건너뛰고 신호만 주고받는 통로입니다.
증거 역시 vGPU 레포 안에 이미 들어 있습니다. agents.md와 llms.txt가 있고, 읽기전용 MCP 서버를 vgpu.sh가 직접 띄우고, 설치형 에이전트 스킬까지 동봉했어요.
OpenAPI 3.1 예제 API까지 붙어서, 에이전트가 이 라이브러리를 배우고 쓰는 경로가 사람용 경로와 나란히 놓입니다. 사람을 홀리는 그래픽 라이브러리조차 문서는 기계용으로 함께 낸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이 트윗은 전망이라기보다 해설에 가깝습니다. 라우크는 미래를 예측한 게 아니라, 자기 제품 로드맵을 소리 내어 읽어준 셈이에요.
중간 웹은 정말 잡아먹힐까요?
반론부터 세워봅니다.
지금 웹 대부분이 그 '중간'입니다. 블로그, 기술 문서, 쇼핑몰 목록, 사내 관리자 화면. 이 페이지들은 화려할 이유도 없고, 기계 전용일 이유도 없어요. 수십 년을 그 모습으로 굴러왔고, 당장 누가 없애러 오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페이지가 아니라 독자를 보면 그림이 달라집니다.
사람이 검색해서 열어보던 페이지를 에이전트가 대신 읽고 요약해 주기 시작하면, 그 페이지에서 실제로 소비되는 건 화면이 아니라 데이터입니다. 검색창에 질문을 치고 파란 링크 열 개를 훑던 동선 자체가, 챗봇에게 묻고 답만 받는 동선으로 갈아타는 중이잖아요.
화면을 볼 사람이 줄어드는데 화면을 유지할 이유는 같이 줄어들어요. 그 순간 중간 페이지는 마크다운 파일과 API 앞에 씌운 껍데기가 됩니다.
라우크 주장에서 무서운 대목이 여기입니다. 중간 웹을 누가 부수러 오는 게 아니라, 독자를 잃어서 스스로 마른다는 시나리오거든요. 망하는 방식 중에 가장 조용한 방식입니다.
남는 중간도 있습니다. 결제, 서명, 계약처럼 사람이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책임져야 하는 자리는 화면이 법적 장치 역할을 해요. 이 자리는 에이전트가 대신 읽어준다고 사라지지 않습니다.
무엇을 보면 판정할 수 있을까요?
제가 잡은 판정 기준은 두 개입니다.
하나, 새 제품이 문서를 낼 때 HTML 페이지보다 마크다운·llms.txt·MCP를 먼저 내놓는가. vGPU 레포는 이미 그렇게 나왔습니다. 이 순서가 업계 기본값이 되면, 중간 웹은 신제품부터 말라 들어갑니다.
둘, 보통 페이지에 들어오는 트래픽에서 에이전트 비중이 얼마나 빨리 크는가. 독자 구성이 바뀌는 속도가 곧 중간 웹이 껍데기가 되는 속도예요.
거창한 지표가 아니라, 새로 나오는 레포 몇 개만 열어봐도 확인할 수 있는 기준입니다.
남는 생각
저는 방향은 맞고 시한은 라우크가 말하는 것보다 길다고 봅니다.
잡아먹히는 건 페이지가 아니라 습관이에요. 사람이 그 페이지를 직접 열어 읽던 습관. 페이지는 한동안 그대로 있겠지만, 읽는 주체가 바뀌면 존재 이유가 먼저 무너집니다.
만드는 사람 입장에서는 결론이 하나로 모입니다. 이제 글이든 제품이든 독자를 둘로 상정해야 해요. 사람에게는 장면을, 기계에게는 신호를. 한쪽만 챙긴 결과물은 라우크가 말한 그 '중간'에 정확히 떨어집니다.
적당히 꾸민 랜딩 페이지, 적당히 정리한 문서. 지금까지는 그 정도면 충분했지만, 앞으로는 어느 독자에게도 최선이 아닌 어중간한 물건이 됩니다.
사람을 붙잡으려면 vGPU급 화면까지 가야 하고, 기계를 붙잡으려면 마크다운과 MCP로 내려가야 해요.
원문·소스
- 기예르모 라우크 원문 트윗 (@rauchg, 조회 8만 3,643·좋아요 1,272): https://x.com/rauchg/status/2093482695838007318
- vGPU 레포 (Vercel Labs): https://github.com/vercel-labs/vgpu
- vGPU 공식 페이지: https://vgpu.sh/
FAQ
자주 묻는 질문
- 그가 말한 두 극단은 정확히 무엇일까요?
- 한쪽은 즐거움과 브랜드에 봉사하는 극도로 화려한 인간 경험이고, 다른 한쪽은 기계를 위한 순수하고 무손실인 신호입니다. 라우크는 앞쪽 도구로 vGPU·three.js·TypeGPU를, 뒤쪽 사례로 마크다운과 MCP를 거명했습니다.
- 화려한 쪽 끝은 누가 만들고 있을까요?
- 거명된 세 도구는 모두 GPU로 브라우저 화면을 그립니다. 그중 vGPU는 Vercel이 자사 홈 화면 코드를 MIT 라이선스로 푼 물건이라, 발화자와 도구가 같은 회사에서 나왔습니다.
- 기계만 읽는 쪽 끝은 어떤 모습일까요?
- 화면이 아예 없는 통로입니다. vGPU 레포에는 agents.md와 llms.txt, 읽기전용 MCP 서버, 설치형 에이전트 스킬, OpenAPI 3.1 예제 API가 사람용 문서와 나란히 들어 있습니다.
- 중간 웹은 정말 잡아먹힐까요?
- 블로그와 기술 문서, 쇼핑몰 목록 같은 중간 페이지는 누가 부수러 오지 않습니다. 다만 에이전트가 대신 읽고 요약하기 시작하면 화면을 유지할 이유가 줄어, 마크다운 파일과 API 앞에 씌운 껍데기가 됩니다.
- 무엇을 보면 판정할 수 있을까요?
- 새 제품이 HTML 페이지보다 마크다운·llms.txt·MCP를 먼저 내놓는지가 첫 기준이고, 보통 페이지 트래픽에서 에이전트 비중이 얼마나 빨리 크는지가 두 번째 기준입니다.